맹목의 덫 제5화 - 붉은 화면 속의 목격자

충전기에 연결된 휴대폰의 붉은 표시등이 마치 맥박처럼 깜빡였다. 엄마는 숨을 죽인 채 그 빛이 녹색으로 변하기만을 기다렸다. 방 밖에서는 도준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소리조차 오늘 밤은 거친 파도처럼 날카롭게 들렸다. 정미소에서 진태와 맺은 위험한 계약, 그리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던 영팔의 모습이 잔상처럼 눈앞을 스쳤다. 하지만 지금 엄마의 온 신경은 이 작은 기계 속에 담긴 '그날의 진실'에 집중되어 있었다.

깨어난 휴대폰, 그리고 잔혹한 기록

마침내 전원이 켜졌다. 손때 묻은 액정 위로 소녀의 일상을 담은 배경화면이 떠올랐다. 엄마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갤러리를 열었다. 수많은 셀카와 친구들과의 평범한 문자들 사이, 사건 당일 날짜로 기록된 동영상 하나가 보였다. 엄마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은 흔들리고 있었고, 안개 낀 읍내의 골목길이 비쳤다. 영상 속에서 누군가가 소녀의 뒤를 쫓고 있었다. 숨 가쁜 소리와 함께 소녀가 멈춰 선 곳은 그 폐건물 옥상이었다.

영상의 각도는 바닥을 향해 꺾였지만, 소리만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소녀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렸다. "나한테 왜 이래? 저리 가!" 그리고 이어진 것은 둔탁한 마찰음과 누군가의 억눌린 웃음소리였다. 엄마는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화면 모퉁이에 범인의 옷자락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것은 도준의 낡은 점퍼 소매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엄마의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듯한 추락감을 느낀 순간, 영상 속에서 범인이 입을 열었다. "나랑 놀자니까..." 그 목소리는 분명 도준의 것이었다.

엄마는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손등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질렀는데, 그 아들이 정말로 그 소녀를 죽인 범인이었다니. 하지만 영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준이 소녀를 밀치고 당황해하며 옥상을 뛰어 내려간 뒤, 화면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도준이 떠난 자리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인물은 쓰러진 소녀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확인하듯 한참을 머물렀다. 도준은 범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거대한 함정에 빠진 목격자였을까.

휴대폰 속 영상을 확인하고 충격에 빠져 입을 틀어막고 있는 엄마


진실을 삼키는 어둠의 연대

엄마는 영상을 몇 번이고 되돌려 보았다. 두 번째 나타난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려 애썼지만, 어둠과 안개 때문에 형체만 보일 뿐이었다. 그때, 방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도준이 눈을 비비며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엄마, 안 자고 뭐 해? 그 휴대폰 내 거야?" 도준의 물음에 엄마는 황급히 휴대폰을 등 뒤로 숨겼다. "아니야, 도준아. 손님 약 지어주려고 공부하고 있었어. 어서 가서 자." 도준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깨달았다. 이제 이 휴대폰은 도준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는 것을. 만약 도준이 소녀를 밀친 것이 직접적인 사인이라면 이 영상은 유죄의 증거가 된다. 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남자가 소녀를 시신처럼 난간에 걸어두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엄마는 휴대폰을 쥐고 부엌으로 나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붉게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휴대폰을 던져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태였다.

"아줌마,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운 영상 아닌가?" 진태는 이미 창밖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엄마는 휴대폰을 가슴에 꼭 껴안았다. 진태의 협박은 이제 단순한 금전 요구를 넘어, 엄마의 목숨을 담보로 한 지독한 게임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진태야,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돈은 얼마든지 줄게." 엄마의 호소에 진태는 도준의 방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돈도 좋지만, 나도 공범이 되고 싶어서 말이야. 이 마을에서 아줌마랑 나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어디 있겠어?"

벼랑 끝의 모성과 악마의 제안

진태는 휴대폰 속 영상을 복사해 두었다며 엄마를 조롱했다. 그는 읍내 유력자의 아들이 소녀의 죽음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도준을 희생양으로 삼아 더 큰 판을 짜려 하고 있었다. 엄마는 진태의 눈 속에서 거대한 악마를 보았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저지른 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와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제 엄마에게 남은 선택지는 진태의 제안대로 마을 전체를 상대로 한 위험한 도박에 뛰어드는 것뿐이었다.

엄마는 다시 작두 앞에 앉았다. 서걱, 서걱. 밤은 깊어갔고 작두질 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그녀는 진태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하자. 대신 우리 도준이는 절대 건드리지 마. 만약 도준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그땐 내가 너부터 썰어버릴 테니까." 엄마의 서늘한 경고에 진태도 잠시 주춤했다. 맹목적인 모성은 이미 광기로 변질되어,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읍내의 안개는 그 어느 때보다 짙게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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