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3화 - 묻어버린 진실의 파편들
읍내의 일상은 무서우리만큼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고물상의 화재는 '노인의 실화'에 의한 불운한 사고로 결론지어졌고, 새롭게 잡힌 외지인 용의자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누구도 그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도준은 다시 거리로 나섰고, 엄마는 다시 작두 앞에 앉았다. 서걱, 서걱. 마른 당귀 뿌리가 잘려 나가는 소리는 예전과 같았으나, 그 소리를 듣는 엄마의 귀에는 환청처럼 노인의 마지막 비명이 섞여 들려왔다. 허벅지에 놓았던 침 덕분에 기억은 안개처럼 흐릿해졌지만, 몸이 기억하는 서늘한 감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듯했다.
평화 아래 소리 없이 흐르는 균열과 의심
도준의 석방 이후, 엄마는 아들을 한시도 눈앞에서 떼어놓지 않으려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그녀의 시선은 늘 도준의 뒤통수에 머물렀다. 하지만 도준은 감옥에서의 기억이 그저 짧은 소풍이라도 다녀온 양 들떠 있었다. "엄마, 진태 형이 나보고 대단하대. 살인범 소리도 듣고 출세했다던데? 나 이제 동네에서 아무도 못 건드려." 도준의 천진난만한 목소리에 엄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말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그녀가 지불한 피의 대가를 비웃는 것 같았다.
도준의 친구이자 읍내의 하이에나로 통하는 진태는 석방된 도준 주변을 맴돌며 묘한 호기심을 보였다. 그는 약재상 앞을 지나칠 때마다 일부러 가래침을 뱉거나, 문틈으로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곤 했다. 진태의 눈빛은 마치 엄마가 감추고 싶어 하는 어둠의 크기를 가늠하려는 것처럼 집요하고 영악했다. 그는 도준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 밤'의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가 엄마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진태는 어느 날 오후, 약재상으로 불쑥 찾아와 소화제를 지어달라며 억지를 부렸다. "아줌마, 도준이가 그러던데. 고물상 불나던 날 밤에 아줌마 신발에 재가 잔뜩 묻어 있었다고. 참 이상하죠?" 진태의 질문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엄마의 가슴을 후벼 팠다. 엄마는 침착하게 작두질을 멈추지 않았지만, 등 뒤로 식은땀이 차갑게 흘러내렸다. 아들은 무심결에 기억의 파편을 흘리고 다녔고, 진태는 그 파편들을 주워 모아 엄마의 목을 조일 밧줄을 꼬고 있었다. 돈이 궁해진 양아치의 협박은 이제 엄마의 일상을 뒤흔드는 새로운 공포가 되었다.
지워지지 않는 붉은 낙인과 환청
엄마는 아들이 가져왔던 은침통을 장롱 가장 깊숙한 곳, 죽은 남편의 유품 아래에 숨겼다. 하지만 그 침통을 만질 때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다. '네가 지운 것은 머릿속의 그림일 뿐, 네 손바닥에 튄 핏방울은 영혼 속에 스며들었다'고 말이다. 밤마다 엄마는 소녀가 발견되었던 그 옥상을 오르는 꿈을 꿨다. 꿈속의 소녀는 기괴하게 꺾인 목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물었다. '진짜 범인은 누군가요? 아줌마가 죽인 그 노인인가요, 아니면...'
엄마는 꿈에서 깰 때마다 헐떡이며 도준의 방을 확인했다. 도준은 세상 편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지만, 엄마의 눈에는 그 평화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얇은 얼음판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엄마는 죽은 소녀의 유품 중 사라진 휴대폰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경찰도, 마을 사람들도 찾지 못한 그 휴대폰 속에 어쩌면 도준의 결백을 완벽히 증명하거나, 혹은 도준을 영원히 파멸시킬 결정적인 증거가 들어있을지 몰랐다. 그녀는 다시금 본능적인 추적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공권력이 아니라, 자신을 협박해오는 진태와 소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읍내 아이들을 향한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그녀의 모성은 이제 자애로운 품이 아니라, 진실을 삼키고 뼈를 깎아내는 거대한 구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소녀가 자주 가던 피시방과 만화방을 돌며 소녀의 행적을 캤다. 그 과정에서 만난 아이들은 소녀를 '쌀떡'이라 부르며 비웃었다. 소녀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떡 몇 개와 자신의 몸을 바꾸던 비참한 처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엄마는 소녀에 대한 동정심과 아들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만약 도준이 그 '쌀떡' 거래의 현장에 있었다면,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새로운 포식자의 등장과 막다른 길
조사를 거듭할수록 읍내 사람들의 추악한 이면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죽은 소녀는 마을 사람 모두가 아끼던 모범생이 아니었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마을의 유력자들, 심지어는 경찰과도 위험한 거래를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엄마는 진실에 다가갈수록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이 단순히 무능한 경찰이나 양아치 진태만이 아님을 직감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순간, 약재상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소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인물이었으며, 자신을 소녀의 유일한 혈육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혈육을 잃은 슬픔보다 탐욕스러운 광기가 서려 있었다. "아줌마 아들이 죽인 거 아니라는 거, 나도 알아요. 그날 밤 도준이는 그냥 구경꾼이었지. 진짜 범인은 따로 있어. 근데 그 증거가 든 휴대폰, 내가 가지고 있거든." 또 다른 포식자의 노골적인 요구였다. 그는 거액의 돈을 요구하며 엄마를 압박했다.
엄마는 다시 한번 작두날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이미 한 번 인간의 경계를 넘어섰던 그녀에게, 두 번째 살의는 그리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돈은 준비할게요. 대신 휴대폰부터 보여줘요." 엄마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단호했다.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읍내의 밤, 엄마는 다시 한번 붉은 헝겊 속의 은침을 꺼내 들 준비를 했다. 이것은 구원을 향한 몸부림인가,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인가. 그녀의 춤사위는 이제 막 서막을 지났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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