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4화 - 침묵을 파는 사람들
밤은 깊어갔고, 읍내의 가로등은 깜빡거리며 불안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약재상 보경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 안의 공기는 평소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엄마는 탁자 위에 놓인 낡은 신문지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위에는 소녀의 죽음과 도준의 무죄 방면, 그리고 고물상 노인의 비극적인 화재 사고가 나란히 실려 있었다. 세상은 이미 결론을 내렸지만, 엄마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서막이라는 것을.
거래의 조건: 죽은 자의 목소리
소녀의 혈육이라 주장하며 나타난 남자, '영팔'은 다음 날 밤 읍내 어귀의 버려진 정미소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는 소녀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작은 기계 안에는 소녀가 죽기 직전까지 누구와 연락했는지, 그리고 그 옥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을 터였다. 엄마는 장롱 깊숙이 숨겨두었던 비상금을 꺼냈다. 아들의 앞날을 위해 한 푼 두 푼 모아온 돈이었지만, 지금은 그 아들의 목숨값을 치러야 할 때였다.
정미소로 향하는 길,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젖은 길을 걸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휴대폰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영팔의 입을 막아야 한다.' 정미소 안은 곰팡이 냄새와 먼지가 뒤섞여 숨이 막힐 듯했다. 어둠 속에서 영팔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나타났다. "돈은 가져왔나? 아줌마 아들이 그날 밤 소녀를 따라가는 영상이라도 들어있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필사적이야?" 영팔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빈 건물을 울렸다.
엄마는 대답 대신 돈뭉치를 내밀었다. 영팔은 돈을 세어보더니 주머니에서 액정이 산산조각 난 휴대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게 바로 판도라의 상자지. 근데 말이야, 돈을 보니까 욕심이 좀 더 생기네? 아줌마가 고물상 노인네 죽던 날 거기 있었다는 소문도 돌던데, 그거까지 입 막으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않겠어?" 영팔은 엄마의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그는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엄마의 영혼을 갉아먹으려는 악마와 같았다.
부러진 은침과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엄마의 손이 외투 주머니 속에서 가늘게 떨렸다. 그 안에는 기억을 지우는 용도가 아닌, 인간의 급소를 단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길고 날카로운 은침이 들어있었다. "휴대폰부터 줘요. 확인해야겠어." 엄마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영팔이 비웃으며 휴대폰을 건네려는 찰나, 엄마는 전광석화처럼 그의 손목을 낚아채고 목덜미 아래의 급소를 겨냥했다. 하지만 영팔은 생각보다 기민했다. 그는 엄마를 거칠게 밀쳐냈고, 엄마는 바닥의 거친 기계 부품 위로 쓰러졌다.
"이 아줌마가 진짜 미쳤나! 살인마 아들 두더니 본인도 살인귀가 됐구먼!" 영팔이 고함을 지르며 휴대폰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휴대폰은 힘없이 튕겨 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엄마는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바닥을 기며 휴대폰을 찾으려 애썼다. 그 순간, 영팔이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극한의 공포와 분노가 엄마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날카로운 쇳조각을 움켜쥐고 영팔의 허벅지를 깊숙이 찔렀다.
비명 소리가 정미소를 가득 채웠다. 영팔이 쓰러진 틈을 타 엄마는 드디어 휴대폰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미소 밖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 있어?" 익숙한 목소리였다. 도준의 친구이자 엄마를 협박하던 진태였다. 그는 처음부터 엄마를 미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태는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며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영팔과 휴대폰을 쥔 엄마를 번갈아 보았다. "와, 아줌마. 진짜 대단하시네. 이제 나랑은 무슨 거래를 하실 건가?"
공범의 그늘 속으로
진태의 등장은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갔다. 이제 엄마가 입을 막아야 할 사람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되었다. 진태는 영팔의 상태를 살피더니 혀를 찼다. "이 형님은 금방 죽진 않겠네. 근데 아줌마, 경찰 부를까 아니면 나랑 손잡을까? 나 요즘 돈이 정말 필요하거든." 진태는 휴대폰을 빼앗아 전원을 켜보려 했지만, 배터리가 나간 듯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엄마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진태를 바라보았다. 아들을 위해 저지른 범죄가 또 다른 범죄를 낳고, 그 사슬은 이제 끊을 수 없을 만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결심했다. 이 진흙탕 싸움에서 도준을 건져낼 수 없다면, 자신과 진태, 그리고 이 모든 비밀을 아는 자들을 모두 한 배에 태워 침몰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진태야, 네가 원하는 거 다 줄게. 대신 이 사람 처리하는 거 도와줘." 엄마의 제안에 진태의 눈이 번뜩였다. 탐욕과 광기가 뒤섞인 정미소 안에서, 한 어머니의 모성은 이제 완전한 악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읍내의 비밀은 빗물에 씻기기는커녕 더 깊은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낯선 얼굴을 보았다. 눈가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도준은 방 안에서 평온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아들이 누리는 이 평화가 자신이 지은 지옥의 대가라는 사실에 엄마는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자, 붉은색 충전 표시가 들어왔다. 곧 저 화면 속에 담긴 진실이 엄마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마저 앗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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