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32화 - 그림자 추적자, 도시의 해부학

섬의 폭발음은 거친 파도 소리에 묻혔고, 세상의 언론은 안세훈 장관과 위원회 수장의 행방불명을 '국가적 비극이자 의문의 사고'로 연일 보도했다. 하지만 차가운 밤바다의 소용돌이에서 사투 끝에 살아 돌아온 도준과 제문에게 세상의 뉴스는 거대한 기만일 뿐이었다. 도준은 제문의 부축을 받으며 도심 외곽, 재개발로 버려진 약령시장 지하의 폐기물 창고에 은신처를 마련했다. 요새에서 자신의 목 뒤를 직접 도려내 칩을 뽑아낸 상처는 깊고 험악했으나, 도준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처럼 묵묵히 자신의 몸에 약초 즙을 발랐다. 그는 바닷물에 젖어 글자가 번진 '위원회의 최종 명단'을 벽에 붙였다. 잉크가 번져 흐릿해진 이름들은 도준의 머릿속에서 핏빛으로 각인된 원한의 이정표처럼 선명하게 살아났다.

밤비 내리는 도시의 고층 빌딩 숲 사이, 차가운 네온사인 불빛 아래 은신처로 향하는 도준과 제문


법의 경계를 넘어선 두 남자: 기묘하고 처절한 공조

제문은 이제 공식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경찰 신분증도, 법의 비호도 없는 그는 도준과 다를 바 없는 '그림자'였다. 제문은 도준이 명단에 적힌 인물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을 묵묵히, 그러나 치밀하게 도왔다. "도준아, 이건 단순한 복수가 아니다. 이놈들을 법정에 세울 수 없다면, 적어도 이 세상이 너 같은 아이들을 다시는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그 추악한 뿌리를 통째로 뽑아버려야 해." 제문은 형사 시절 쌓아온 정보망과 잠입 기술을 총동원해 명단 속 인물들의 일과와 보안 취약점을 분석했다. 도준은 제문이 가져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타겟에게 맞는 최적의 '처방'을 준비했다. 이제 도준의 은침은 단순한 살상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 속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강제로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정교한 고문 도구이자 심판의 칼날이 되어가고 있었다.

명단의 최상단에 적힌 첫 번째 이름은 '권성택'이었다. 위원회의 자금을 관리하며 지난 수십 년간 불법 인체 실험을 법적으로 은폐해온 대형 로펌의 대표. 그는 매일 밤 철저한 사설 경호를 받으며 강남의 최고급 펜트하우스로 귀가했다. 도준은 로펌 건물의 공조 시스템을 해킹하는 대신, 권성택의 전용 리무진이 지나갈 경로의 지하 하수관에 잠입했다. 리무진의 타이어가 미세한 압력 차이를 보이며 서서히 주저앉게 만든 뒤, 차가 멈춰 선 찰나 도준은 빗줄기 사이를 가로질러 유령처럼 나타났다. 당황한 경호원들이 총을 꺼내기도 전에, 도준의 은침은 그들의 손목 인대와 신경절을 정확히 끊어놓았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무너진 경호원들을 뒤로한 채, 도준은 공포에 질린 권성택의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채며 차갑게 읊조렸다. "당신이 변호했던 그 끔찍한 실험들, 이제 당신의 썩어빠진 몸으로 직접 변호해볼 시간이야."

심판의 집행: 마비된 양심을 향한 해부학적 처방

도준은 권성택을 로펌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비밀 기록 보관소로 끌고 갔다. 그곳은 위원회가 저지른 온갖 악행과 인권 유린의 증거들이 '법률 자문'이라는 이름 아래 산더미처럼 쌓인 성역이었다. 도준은 권성택을 의자에 결박한 뒤, 그의 척수와 뇌 신경을 잇는 급소에 특수 제작한 흑침을 꽂았다. "이 침은 당신의 양심을 깨우지는 못할 거야. 하지만 당신의 뇌가 거짓을 말하거나 사실을 은폐하려 할 때마다, 온몸의 근육이 거꾸로 뒤틀리며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선사하겠지." 도준의 심문은 잔혹하면서도 정교했다. 권성택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위원회의 다음 수장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노리는 마지막 프로젝트인 '정신 지배 약물 상용화'의 실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문은 어둠 속에서 이 모든 과정을 고성능 카메라로 기록하며, 위원회의 성벽을 무너뜨릴 결정적인 증거물을 완성해 나갔다.

그러나 위원회의 반격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자금책인 권성택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위원회는 도시 전체에 계엄령에 준하는 사설 보안망 '블랙 넷'을 가동했다. 위원회의 새로운 실권자로 부상한 인물은 안세훈보다 훨씬 잔인하고 치밀하다고 알려진 '성 고문'이었다. 그는 도준의 약점이 읍내에 있음을 간파하고, 보경당의 옛 주민들과 도준의 지인들을 소리 없이 납치해 인질로 삼겠다는 협박을 암암리에 흘렸다. 도준의 은색 눈동자가 분노로 다시금 불타올랐으나, 제문이 그의 어깨를 부서질 듯 강하게 붙잡았다. "참아야 해, 도준아. 이건 명백한 함정이다. 네가 읍내로 돌아가는 순간 우리 모두의 희생은 물거품이 돼. 여기서, 이 도시의 심장부에서 놈들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사라지지 않는 과거의 그림자, 그리고 뜻밖의 조력자

긴장이 감도는 은신처 지하에서 도준은 새로운 약물을 배합하며 자신의 몸에도 직접 주입했다. 요새에서 칩을 강제로 뽑아낸 후유증으로 가끔씩 시야가 흐려지고 극심한 발작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도준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과 텅 빈 눈동자를 보며 죽은 유진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가 마지막에 남긴 "넌 살아서 끝까지 지켜봐"라는 말이 마치 저주처럼, 혹은 사명처럼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바로 그때, 은신처의 보안 센서가 날카롭게 울렸다. 제문이 권총을 겨누며 입구 쪽을 경계했으나, 나타난 인물은 위원회의 자객이 아니었다. 온몸에 참혹한 화상을 입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살아 돌아온, 도준의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석구'였다.

32화의 끝, 석구는 피 묻은 가방 하나를 도준에게 내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가방 안에는 유진이 자폭하기 직전 자신의 데이터 센터에서 빼내어 석구에게 맡겼던 마지막 유산—위원회의 수장을 단번에 무력화할 수 있는 '역세(逆世)의 독'의 최종 배합법과 위원회 핵심 간부들의 실시간 위치 추적 장치가 담겨 있었다. 도준은 배합법을 읽어 내려가며 자신의 손에 쥔 은침을 부러질 듯 꽉 쥐었다. 이제 사냥의 흐름은 방어에서 전면적인 공격으로 전환되었다. 제문은 지도를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내일 위원회의 전체 비밀 회의가 열린다. 거기가 그들의 화려한 무덤이 될 거야." 도준은 창밖의 비구름 낀 하늘을 응시했다. 40화 완결까지 남은 여덟 번의 걸음, 그 거대한 단죄의 서막이 이제 막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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