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29화 - 해부된 정의, 위원회의 첫 번째 제물

밤의 도시는 거대한 환자의 가슴팍처럼 거칠게 들썩였다. 병원을 탈출한 도준은 네온사인이 닿지 않는 뒷골목의 허름한 폐건물에 몸을 숨겼다. 그는 거울도 없이 감각만으로 가슴의 총상을 다시 처치했다. 직접 조제한 독초 가루를 상처에 뿌리자 살이 타들어 가는 극통이 밀려왔지만, 도준의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이미 그의 신경계는 유진이 주입한 검은 약물과 스스로 조절하는 은침의 자극으로 인해 고통의 경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도준은 안세훈의 비밀 칩을 통해 알아낸 첫 번째 타겟, '위원회'의 자금책이자 전직 보건복지부 차관인 박용식의 위치를 특정했다.

침묵의 해부학, 성역을 허물다

박용식의 저택은 도시 외곽의 삼엄한 경비 속에 요새처럼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도준에게 현대적인 보안 시스템은 엄마가 가르쳐준 자연의 섭리보다 허술했다. 그는 환기구를 통해 고농축 마비 향을 흘려보냈고, 경비견들이 소리 없이 쓰러지는 사이 담장을 넘었다. 도준의 손에는 작두 대신 정교하게 갈아낸 메스와 수십 개의 은침이 들려 있었다. 저택의 서재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만끽하던 박용식은 공기 중에 감도는 기묘한 약초 냄새를 맡는 순간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그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날아온 은침이 그의 성대를 마비시켰다.

도준은 박용식의 눈앞에 천천히 나타났다. "박 차관님, 30년 전 읍내 아이들의 생명을 팔아 넘긴 장부의 무게가 꽤 무거웠나 보네요. 이렇게 큰 집을 지은 걸 보니." 도준의 목소리는 감정이 배제된 채 차분했다. 그는 박용식의 팔다리 주요 신경절에 침을 꽂아 그를 의자에 고정했다. 이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박용식이 저질렀던 죄악을 육체적으로 각인시키는 '해부적 단죄'였다. 도준은 박용식의 금고를 열어 위원회의 다음 계획이 담긴 마이크로필름을 확보했다. 박용식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자비를 구하려 했지만, 도준은 차갑게 읊조렸다. "걱정 마세요. 죽이진 않아. 당신이 만든 그 추악한 세상이 무너지는 걸 끝까지 지켜보게 해줄 테니까."

제문의 각성: 법의 이름이 아닌 인간의 의지로

한편, 도준이 남긴 쪽지를 단서로 위원회의 실체를 추적하던 제문은 경찰 내부의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상부에서는 도준의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단독 범행'으로 종결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제문의 모든 수사 권한을 박탈했다. 하지만 제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정직 중에 만난 옛 동료들을 포섭해 사설 수사팀을 꾸렸다. "우리가 잡아야 할 건 도준이가 아니야. 도준이를 괴물로 만든 이 세상의 뿌리다." 제문은 도준이 박용식의 저택을 습격할 것을 예견하고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백치가 되어버린 박용식과 벽에 혈서로 남겨진 '위원회'라는 세 글자뿐이었다.

제문은 도준이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도준의 방식은 확실했지만, 그 끝에는 결국 도준 자신도 파멸할 것이 뻔했다. 제문은 박용식의 서재에서 도준이 일부러 흘리고 간 듯한 단서를 발견했다. 그것은 위원회의 수장, 일명 '설계자'가 머무는 비밀 섬의 좌표였다. 제문은 도준이 자신을 그곳으로 초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악과의 마지막 전쟁을 위해, 도준은 제문이라는 유일한 '인간적 정의'를 곁에 두려 한 것이었다. 제문은 권총 대신 도준의 은침통을 쥐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림자의 반격, 유진의 마지막 도박

도시의 또 다른 구석에서 유진은 도준과 위원회 사이의 틈새를 노리고 있었다. 그녀는 도준이 박용식을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도준아. 그렇게 다 부숴버려. 그리고 마지막엔 네 손으로 네 아버지를 죽이게 될 거야." 유진은 안세훈 장관이 감옥 안에서 의문의 자살로 위장해 살해당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위원회가 꼬리를 자르기 시작한 것이다. 유진은 이제 도준을 돕는 척하며 위원회의 수장에게 접근할 마지막 도박을 준비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남은 화상 자국을 어루만지며 폭탄 조끼를 점검했다. 그녀의 복수는 모두가 타 죽는 거대한 화염으로 완성될 예정이었다.

29화의 끝, 도준은 작은 보트를 타고 안개 낀 바다를 건너 '설계자의 섬'으로 향했다. 은색 눈동자는 이제 밤바다의 파도보다 더 깊고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섬의 해안가에 발을 내딛는 순간, 수백 개의 서치라이트가 도준을 비추었다. 하지만 도준은 당황하지 않고 품속에서 작두날을 꺼내 들었다. "진료 시작할게요. 환자가 너무 많네." 도준의 나직한 혼잣말과 함께 섬 전체에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이제 40화 완결을 향한 최후의 대결장, '악의 성역'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사투가 막을 올리고 있었다.

도준의 습격으로 산산조각 난 위원회 소속 거물 의사의 진료실과 피 묻은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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