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16화 - 네온사인 아래의 안개, 도시의 사냥꾼
도시의 밤은 읍내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소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화려한 네온사인이 아스팔트 위 웅덩이에 반사되어 기괴한 원색의 문양을 만들어내는 거리. 도준은 그 낯선 소음과 빛의 홍수 속에서 이방인처럼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더 이상 읍내의 바보 도준이 아니었다. 병원 환자복 대신 훔쳐 입은 검은 코트는 그의 마른 체구를 가려주었고, 눌러쓴 모자 챙 아래로 번뜩이는 눈빛은 도시의 포식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엄마가 가르쳐준 '숨 죽이는 법'은 인파 속에서 완벽한 보호색이 되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 속에 스며든 읍내의 향기
도준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화려한 빌딩 숲 뒤편, 썩은 물비린내와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뒷골목의 허름한 전당포 앞이었다. 그는 품속에서 수건에 정성스럽게 싸인 물건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불타버린 약재상 지하실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챙긴, 읍내 국회의원의 치부책 중 일부였다. 전당포의 낡은 철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자, 안경알이 두꺼운 노인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맞이했다. "뭐 하는 놈이야? 여긴 아무나 오는 데가 아닌데." 노인의 목소리에는 경멸이 섞여 있었다. 도준은 대답 대신 수첩의 한 페이지를 찢어 노인의 앞에 놓았다. 노인의 눈이 커지더니 손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종이에는 노인이 평생 숨기고 싶어 했던 과거의 범죄 기록이 적혀 있었다.
"이걸... 네가 어떻게..." 노인이 말을 잇지 못하자 도준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며 속삭였다. "엄마가 그랬어요.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대신 비밀을 아는 사람은 대접받아야 한대요." 도준의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러워 오히려 뱀의 혀처럼 서늘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는 전당포 노인을 협박해 현금과 가짜 신분증, 그리고 은밀하게 거래되는 날카로운 의료용 메스 세트를 손에 넣었다. 엄마의 은침보다 더 길고, 더 예리하게 살을 파고들 수 있는 도구였다. 도준은 메스를 손가락 사이로 돌리며 읍내에서 작두를 갈던 감각을 되살렸다. 도시의 밤은 이제 그의 거대한 약재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전당포 구석의 어둠 속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붉은 입술과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가진 그녀는 '유진'이라 불리는 해결사였다. 그녀는 읍내 국회의원과 적대 관계에 있는 정치 세력의 정보원이었다. "네가 그 '보경당'의 아들이니? 소문보다 훨씬 영리해 보이네." 유진의 향수 냄새가 도준의 코끝을 스쳤으나, 도준은 그 향기 아래 숨겨진 살의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유진은 도준에게 국회의원의 은신처가 담긴 지도를 건네며 위험한 제안을 했다. "우릴 도와 그 노인네를 완전히 무너뜨려 주면, 네 엄마의 복수를 도와주지. 아니, 네 엄마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도 줄 수 있어."
추적자의 집착: 제문의 좁혀오는 포위망
한편, 도준이 탈출한 정신병동은 발칵 뒤집혔다. 형사 제문은 현장에 남겨진 유일한 흔적인 '머리카락 한 올'조차 남기지 않은 도준의 치밀함에 치를 떨었다. "이놈은 바보가 아니야. 우리 모두가 속은 거라고!" 제문은 반쯤 미친 사람처럼 도준의 행적을 쫓아 도시의 밑바닥을 훑고 다녔다. 그는 도준이 읍내에서 쓰던 약초의 성분이 도시의 특정 약재상에서 대량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도준은 자신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사냥하기 위한 독을 제조하기 위해 다시 약을 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문은 도준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시원 방에 들이닥쳤다. 그곳은 이미 비어 있었지만, 벽에는 기괴한 낙서들이 가득했다. 엄마의 얼굴을 그린 듯한 그림과 그 주변을 감싼 수천 개의 침 자국들. 그리고 방 한가운데 놓인 작은 종이 상자 안에는 말린 당귀 뿌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도준이 제문에게 보내는 조롱이었다. '당귀(當歸)', 마땅히 돌아와야 할 곳으로 돌아온다는 뜻. 제문은 자신의 등 뒤에서 도준이 지켜보고 있는 듯한 서늘한 감각에 권총을 꺼내 들었다. "나와, 도준아! 숨어있지 말고 당당하게 나오란 말이야!" 제문의 외침은 텅 빈 방안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도준은 고시원 건물 옥상에서 제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유진이 준 지도를 펼쳐 들고 국회의원이 숨어 있는 호화 펜트하우스의 위치를 확인했다. 비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고, 도준의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그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입혀주었던 그 온기를 기억하며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엄마, 이제 거의 다 왔어.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의 목소리를, 내가 하나씩 지워줄게." 도준은 옥상 난간에서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옆 건물로 뛰어넘었다.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그의 뒤로, 도시의 안개가 읍내의 그것처럼 짙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피의 처방전, 첫 번째 심판
국회의원의 은신처인 펜트하우스는 삼엄한 경비 속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도준은 정면 돌파 대신 환기 시스템을 노렸다. 그는 전당포에서 구한 강력한 신경 마비제를 액체화하여 중앙 공조기에 주입했다. 화려한 거실에서 술을 마시던 경호원들이 하나둘씩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근육이 굳어가는 공포를 맛보아야 했다. 도준은 방독면을 쓴 채 천천히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발소리는 마치 저승사자의 걸음처럼 규칙적이고 무거웠다.
침실 안쪽,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늙은 국회의원을 마주한 도준은 천천히 방독면을 벗었다. 국회의원은 도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오줌을 지리며 자비를 구했다. "살려다오! 내가 다 보상해주마! 네 엄마도 내가 다시 찾아줄게!" 도준은 국회의원의 목에 예리한 메스를 갖다 대고 차갑게 웃었다. "아저씨, 우리 엄마가 약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독을 빼는 게 아니라, 독이 어디에 쓰일지 결정하는 거래요. 아저씨는 이제 내 약의 좋은 재료가 될 거예요." 도준의 손이 움직였고, 펜트하우스의 화려한 조명 아래로 짙은 핏물이 카펫을 적시기 시작했다. 도시의 첫 번째 사냥은 그렇게 완벽하게 성공했고, 도준은 피 묻은 메스를 닦으며 다음 사냥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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