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14화 - 작두의 울음과 핏줄의 종막
읍내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폭풍우 속에서 약재상 '보경당'은 거대한 무덤처럼 보였다. 마당 곳곳에 켜진 촛불들은 비바람에 일렁이며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지붕 위에서 춤을 추던 도준의 실루엣은 이미 인간의 형상을 벗어나 있었다. 국회의원이 보낸 전문 킬러들이 담장을 넘어 마당으로 진입했을 때, 그들이 마주한 것은 어리숙한 청년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숨어 기다리는 포식자였다. 도준은 엄마가 작두를 갈 때 쓰던 숫돌의 리듬을 타며, 어둠 속에서 첫 번째 침입자의 목을 정확히 겨냥했다.
피로 물든 약재상, 사냥꾼이 된 아들
도준의 공격은 전율이 돋을 만큼 잔혹하고 정교했다. 그는 총을 든 사내들의 사각지대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 엄마가 가르쳐준 '인체의 급소'는 이제 사람을 살리는 약방의 지식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으로 생명을 끊어내는 살인 기술이 되어 있었다. "아저씨들, 우리 엄마가 집안싸움에 남들 끼어드는 거 아니랬는데." 도준의 무거운 작두날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비명이 빗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화약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가 뒤섞인 마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준은 자신의 몸에 튀는 피를 마치 훈장처럼 여기며, 광기 어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킬러들이 중화기를 난사하며 약재상 건물 안으로 몰아넣으려 했지만, 도준은 이미 지하 통로와 약초 저장실을 이용해 그들의 뒤를 잡고 있었다. 그는 엄마가 숨겨둔 고농축 마취 가스를 터뜨려 침입자들의 시야를 가렸고, 눈이 먼 자들의 심장에 은침을 박아 넣었다. 도준은 이 모든 과정이 마치 즐거운 놀이인 양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에게 있어 이 학살은 엄마에게 물려받은 '사랑의 결실'을 증명하는 의식이었다. 하지만 그 광기의 축제가 절정에 달했을 때, 약재상의 대문이 천천히 열리며 핏기 없는 얼굴의 엄마가 나타났다.
어미의 자책과 마지막 은침
탈옥하여 읍내까지 기어온 엄마의 몰골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그녀의 발자국마다 핏물이 고였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오직 아들만을 쫓고 있었다. 마당에 널브러진 시신들과 그 사이에서 피칠갑을 한 채 춤추는 도준을 본 엄마는 가슴이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도준아! 그만해! 제발 그만해!" 엄마의 절규에 도준이 멈춰 섰다. 도준은 피 묻은 작두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엄마! 왔어? 내가 엄마 방해하는 놈들 다 치웠어. 이제 우리 진짜 행복할 수 있어."
엄마는 다가오는 아들을 안아주는 대신, 소매 속에 숨겨두었던 날카로운 은침을 꺼냈다. 그녀는 깨달았다. 이 아이를 살려두는 것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영원한 지옥에 가두는 일임을. 엄마는 울면서 도준의 가슴을 밀쳐냈다. "아니야, 도준아. 이건 행복이 아니야. 내가... 내가 널 이렇게 만들었구나. 내 죄가 너무 커서 널 괴물로 키웠어." 엄마의 손에 든 은침이 가늘게 떨렸다. 도준은 엄마의 눈에 서린 살기를 눈치채고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의 손을 잡아 자신의 심장 부근으로 가져다 댔다.
"엄마가 하는 건 다 맞는 거잖아. 엄마가 나 살리려고 사람 죽였을 때도, 내가 그거 다 봤을 때도... 나는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한 거야." 도준의 순진무구한 대답은 엄마의 마지막 이성을 끊어놓았다. 엄마는 오열하며 도준의 어깨를 붙잡고 은침을 내리꽂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살아남은 킬러 한 명이 바닥에 떨어진 총을 집어 들고 도준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정적을 깨는 총성과 함께 엄마는 본능적으로 도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탄환은 엄마의 등을 관통했고, 붉은 꽃이 그녀의 가녀린 몸 위에서 피어올랐다.
무너진 우상과 안개 속의 도주
엄마는 도준의 품에 쓰러지며 마지막 힘을 짜내 아들의 눈을 가렸다. "도준아... 보지 마... 잊어... 다 잊고 살아야 해..." 그것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아들의 결백을 지키려는 눈 먼 모성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엄마의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도준의 얼굴에는 엄마의 따뜻한 피가 튀었다. 도준은 처음으로 웃음을 멈췄다. 자신의 유일한 세계이자, 자신을 괴물로 정의해주던 절대적인 존재가 사라진 것이다. 도준은 엄마의 시신을 껴안고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읍내를 가득 채웠던 광기는 순식간에 처절한 상실감으로 바뀌었다.
형사 제문과 경찰들이 약재상을 포위했을 때, 그곳에는 불타는 건물과 수많은 시신들, 그리고 죽은 엄마를 품에 안고 넋이 나간 도준만이 남아 있었다. 도준은 자신을 체포하려는 경찰들을 향해 다시 작두를 집어 들려 했지만, 엄마의 마지막 유언인 '잊으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엄마가 남긴 은침을 자신의 머리 뒤 특정 혈자리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스스로의 기억을 파괴하는 금기의 의술이었다. 도준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약재상은 화염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사건은 '미친 노파의 광기 어린 범죄와 화재'로 종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수개월 후, 읍내 근처의 다른 마을에서 낡은 침통을 든 어수룩한 청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눈으로 사람들에게 약을 지어주었지만, 그가 다녀간 집마다 알 수 없는 실종 사건이 발생하곤 했다. 엄마는 죽어서도 아들을 지키려 했지만, 그녀가 남긴 피의 유산은 결코 끊어지지 않은 채 안개 너머에서 새로운 포식자를 키워내고 있었다. 읍내의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그 속에서 맹목적인 사랑이 낳은 슬픈 괴물은 다시 사냥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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