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9화 - 남겨진 자의 기억과 깨어난 본능
엄마가 쓰러진 뒤, 읍내의 공기는 예전보다 훨씬 더 무겁고 눅진해졌다. 국회의원은 구속되었고 진태는 다시는 빛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갔지만, 그 모든 승리의 대가는 가혹했다. 병원으로 실려 간 엄마의 생사는 불분명했고, 도준은 다시 텅 빈 약재상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제 도준을 살인마라 부르지 않았지만, 대신 '미친 여자의 아들'이라며 다른 의미의 벽을 세웠다. 도준은 홀로 앉아 작두날을 만졌다. 엄마가 없으니 그 소름 돋는 '서걱'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홀로 선 아이, 껍질을 깨고 나오다
도준은 평소처럼 천진난만한 얼굴로 읍내를 배회했지만, 그의 눈빛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엄마의 과보호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자리에는, 생존을 위한 기괴한 본능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지나가는 개와 장난치지 않았고, 시장 상인들이 던지는 비아냥에 웃음으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그 진실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도준의 마음속에는 엄마가 가르쳐준 '사랑'보다, 엄마가 보여준 '폭력'의 잔상이 더 깊게 뿌리 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도준을 아끼는 척하며 뒤로는 무시하던 형사 제문이 약재상을 찾아왔다. 제문은 사건이 깔끔하게 해결된 것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특히 국회의원 저택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들이 너무나 완벽하게 조작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도준아, 엄마가 병원에서 깨어나면 물어볼 게 참 많은데 말이야. 너는 그날 밤 정말 아무것도 못 봤니?" 제문의 질문은 부드러웠지만 끝날을 감추고 있었다. 도준은 작두 앞에 앉아 말없이 약초를 썰기 시작했다. 서걱. 엄마의 손길을 흉내 내는 도준의 손동작은 기괴할 정도로 정확했다.
도준은 제문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사 아저씨,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나쁜 꿈은 침을 맞으면 잊히는 거라고. 아저씨도 나쁜 꿈 꿔요? 내가 침 놓아줄까?" 도준의 목소리는 너무나 맑아서 오히려 등등땀이 솟게 만들었다. 제문은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아 뒷걸음질 쳤다. 도준의 손에는 엄마가 장롱 깊숙이 숨겼던 그 은침통이 들려 있었다. 엄마가 가르쳐주지 않은, 혹은 엄마가 절대 가르쳐주지 않으려 했던 '망각의 기술'을 도준은 이미 본능으로 깨우치고 있었다.
약재상 밑바닥의 비밀 공간
제문이 떠난 뒤, 도준은 엄마가 작업하던 평상 밑을 뜯어냈다. 그곳에는 엄마가 평생 모아온 한약재가 아닌, 읍내 사람들의 치부와 비밀이 적힌 낡은 수첩들이 가득했다. 엄마는 약재상을 운영하며 사람들의 몸만 고친 게 아니라, 그들의 비밀을 담보로 아들을 지켜왔던 것이다. 도준은 수첩 하나하나를 넘기며 읍내 지도를 머릿속에 다시 그렸다. 누가 소녀와 만났는지, 누가 엄마를 괴롭혔는지, 그리고 누가 아직도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지.
수첩의 마지막 장에는 엄마의 비뚤비뚤한 글씨로 메모가 적혀 있었다. '도준아, 만약 엄마가 없으면 이 침통을 절대 열지 마라. 기억은 짐이고 진실은 고통이다.' 하지만 도준은 이미 침통을 열었고, 그 안에 든 은침의 서늘한 감촉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보호받는 나비가 아니었다. 그는 거미줄을 치기 시작한 거미처럼, 자신을 가두려 했던 읍내라는 거대한 감옥을 자신의 영지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맹목적인 모성이 낳은 결과는 순수한 결백이 아니라, 가장 순수한 악의 탄생이었다.
그날 밤, 읍내를 다시 안개가 덮었다. 도준은 엄마가 입던 낡은 외투를 걸치고 약재상 밖으로 나섰다.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엄마를 병원 침대에 눕게 만든 배후 세력들, 아직 처단되지 않은 읍내의 잔당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이었다. 도준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나직이 속삭였다. "엄마, 이제 내가 지켜줄게. 다 잊게 해줄게." 도준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서늘한 살기만이 감돌았다. 이제 읍내의 전설은 '마더'에서 '아들'로 이어지고 있었다.
어둠을 뚫고 오는 새로운 그림자
한편, 읍내로 들어오는 국도에 낯선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 안에는 국회의원의 뒷수습을 위해 중앙에서 내려온 해결사들이 타고 있었다. "그 미친 여자 아들이 수첩을 가지고 있다더군. 흔적도 없이 지워라." 그들의 명령은 짧고 단호했다.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진짜 어둠이 도준을 향해 좁혀오고 있었다. 도준은 약재상 골목 끝 가로등 아래에서 멈춰 서서 그 차를 바라보았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은침 하나를 입에 물고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읍내는 단순한 범죄 현장을 넘어, 본능과 권력이 충돌하는 거대한 사냥터로 변모하고 있었다. 엄마가 목숨 걸고 지켰던 아들은, 이제 그 엄마를 넘어서는 괴물이 되어 첫 번째 사냥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개는 점점 더 짙어져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 속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다시 한번 고요를 깨뜨렸다. 도준의 첫 번째 복수는 그렇게 읍내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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