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소음이 잦아든 새벽 3시, 제문은 도준이 남긴 피의 궤적을 따라 폐기물 처리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다. 녹슨 철문 사이로 매캐한 약초 타는 냄새와 비릿한 금속 향이 섞여 나왔다. 그곳은 더 이상 처리장이 아니었다. 엄마의 약재상 ‘보경당’을 기괴하게 복제해 놓은, 도준만의 제단이자 처형장이었다. 제문은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도준아, 이제 끝내자. 네가 만든 이 지옥, 네 엄마도 원치 않을 거야." 제문의 목소리가 텅 빈 공간에 메아리쳤다.
박제된 모성, 그리고 드러난 진실
어둠 속에서 도준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엄마가 생전에 입던 낡은 앞치마를 걸치고, 무표정한 얼굴로 작두를 갈고 있었다. 슥, 슥. 숫돌과 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아저씨, 엄마는 항상 거짓말을 했어요.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나를 거울로 썼던 거예요. 자신의 증오를 비춰볼 거울." 도준은 작두날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차갑게 웃었다. 벽면에는 그동안 도준이 사냥한 자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 중심에는 죽은 줄 알았던 국회의원과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제문은 사진들을 보며 경악했다. "이건... 국회의원이 아니야." 사진 속 남자는 국회의원과 닮았지만, 눈매가 훨씬 날카로운 다른 인물이었다. 도준은 제문의 당황을 즐기듯 말을 이었다. "맞아요. 국회의원은 껍데기였어. 진짜 내 아버지는 읍내 사람 모두가 존경하던 그 인자한 보건소장이었지. 엄마를 유린하고, 나를 바보로 만들라고 지시한 진짜 괴물." 도준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격정적인 분노가 섞여 나왔다. 엄마는 평생 동안 엉뚱한 복수의 대상을 세워 도준을 훈련시켰고, 진짜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숨겨두었던 것이다.
엄마의 맹목적인 사랑은 사실 거대한 연극이었다. 그녀는 도준이 진실을 알게 될까 봐 그를 바보로 만들었고, 자신의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 도준과 함께 죽으려 했다. 하지만 도준은 엄마의 예상을 깨고 스스로 기억을 되살려냈으며, 이제는 엄마가 차마 손대지 못했던 '진짜 아버지'를 향해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제문은 이 비극의 깊이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식을 무기로 사육한 어머니와, 그 무기가 되어 세상을 도륙하는 아들. 이들 중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가릴 수 없는 혼돈이었다.
폭풍전야의 대결, 마지막 처방전
도준은 품속에서 붉은 약병을 꺼내 한 방울을 자신의 눈에 떨어뜨렸다. 동공이 순식간에 확장되며 그의 신체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좋은 경찰이었어요. 그래서 아저씨한테는 특별한 약을 줄게요. 고통 없이 모든 걸 잊게 해주는 약." 도준은 작두를 휘두르며 제문에게 달려들었다. 제문은 공중을 날아오르는 도준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약 기운으로 각성한 도준의 움직임은 탄환보다 유연했다. 작두날이 제문의 팔을 스치며 깊은 자상을 남겼다.
제문은 바닥을 구르며 도준의 다리를 겨냥해 다시 총을 쐈다. 탕! 총성이 울리고 도준의 왼쪽 다리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그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기괴한 자세로 다시 일어섰다. "아저씨, 엄마가 그랬어. 피는 씻으면 지워지지만, 기억은 베어내야 사라지는 거라고!" 도준의 공격은 점점 더 맹렬해졌고, 제문은 막다른 벽에 몰렸다. 도준의 작두가 제문의 목을 겨냥해 내려쳐지던 그 찰나, 처리장의 낡은 스피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죽은 줄 알았던 엄마의 목소리였다.
"도준아... 멈춰라... 그만하면 됐다..." 녹음된 목소리였는지, 혹은 환청이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도준의 동작이 멈칫했다. 그 틈을 타 제문은 도준의 가슴을 걷어차고 그를 제압했다. 도준은 바닥에 쓰러진 채 허공을 응시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야?" 광기에 젖어 있던 그의 눈이 잠시 예전의 어수룩한 도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준은 자신의 목에 은침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제문이 말릴 틈도 없었다.
무너진 성역, 그리고 사라진 시신
도준은 발작하며 의식을 잃었고, 제문은 긴급히 구급차를 불렀다. 하지만 경찰과 구급대원이 들이닥쳤을 때, 도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바닥에는 그가 사용하던 작두와 엄마의 은침통, 그리고 제문이 쫓던 '진짜 아버지' 보건소장의 이름이 적힌 피 묻은 쪽지만이 남겨져 있었다. 도준은 자신의 신경을 마비시켜 죽은 척 위장한 뒤, 혼란을 틈타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제문은 허탈하게 웃으며 쪽지를 꽉 쥐었다. 이제 사냥의 무대는 도시에서 다시 그 비극의 발원지, 읍내로 옮겨가고 있었다.
20화의 끝, 읍내 보건소 앞. 휠체어를 탄 인자한 모습의 보건소장이 안개 낀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의 뒤로 낡은 작두를 든 그림자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아빠, 약 지으러 왔어요." 도준의 나직한 목소리가 안개 속에 퍼지며, 전반부의 모든 서사가 종결되고 후반부의 더 잔혹한 진실 게임이 시작됨을 알렸다. 맹목의 덫은 이제 창조주를 넘어, 그 뿌리를 향해 닫히고 있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