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31화 - 뒤집힌 족보, 보경당의 주인

요새 전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유진이 지하에서부터 시작한 연쇄 자폭은 강철 요새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고, 최상층 집무실의 벽면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무너진 천장 틈새로 검은 매연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도준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앞에 앉은 노인을 응시했다. 휠체어에 앉은 노인은 쭈글쭈글한 손으로 산소마스크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그가 내뱉는 거친 숨소리에는 죽음의 냄새와 함께 수십 년간 쌓아온 뒤틀린 집념이 서려 있었다. "도준아... 네 엄마가 너를 지키기 위해 나를 죽였다고 가르쳤더냐? 그 아이는 결코 나를 죽이지 못했다. 내 딸이었으니까." 노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도준의 머릿속에는 벼락처럼 울려 퍼졌다.

죽음에서 돌아온 설계자, 보경당의 진짜 주인

노인은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닦았다. "30년 전, 읍내 보경당은 단순한 약재상이 아니었다. 그곳은 국가의 이름 아래 인간의 감각을 지우고 오직 본능만 남긴 병기를 만드는 제련소였지. 내가 그곳의 주인이었고, 네 엄마는 내 첫 번째이자 가장 사랑하는 실험체였다." 도준은 작두를 쥔 손을 심하게 떨었다. 엄마가 자신에게 가르쳤던 그 침술, 매일 밤 억지로 마시게 했던 그 쓴 약초물들... 그 모든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노인의 입에서 나온 진실은 달랐다. "네 엄마는 실험을 완성할 핵심 데이터를 들고 도망친 배신자였다. 그녀가 너를 바보로 만든 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네 안에 잠든 '완벽한 본능'이 깨어나면 내가 너를 다시 찾으러 올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지. 넌 태어날 때부터 내 것이었다."

도준은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엄마의 유언, "절대 눈을 뜨지 마라"는 말의 진짜 의미가 가슴을 난도질했다. 그것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만든 괴물에 대한 공포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도준의 이성을 갉아먹었다. 노인은 비릿하게 웃으며 품속에서 소형 리모컨을 꺼내 들었다. "이제 그만 연극을 끝내자꾸나. 네 목 뒤에 심어진 칩은 내 목소리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돌아와라, 나의 가장 위대한 작품아." 노인이 버튼을 누르자, 도준의 척추를 타고 극심한 전기 충격이 밀려왔다. 도준의 은색 눈동자가 격렬하게 점멸하며 그의 의지를 암흑 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유진의 자폭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요새의 복도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불길


제문의 난입과 뒤섞인 정의

그때, 화염을 뚫고 제문이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의 옷은 불에 타 너덜너덜해졌고, 어깨에는 파편에 찔린 상처가 깊었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도준아! 그 노인의 말을 듣지 마! 넌 누군가의 작품이 아니야! 넌 그냥 도준이야, 읍내 보경당의 도준이라고!" 제문은 노인을 향해 권총을 겨눴지만, 노인의 비밀 경호원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제문을 가로막았다. 제문은 총성이 난무하는 가운데 몸을 날려 도준에게 접근하려 했다. "도준아, 네 엄마가 마지막까지 너를 보며 울었던 건, 네가 괴물이라서가 아니라 네가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서였어! 정신 차려!"

도준은 칩의 신호에 조종당하며 자신을 붙잡으려는 제문의 목을 움켜쥐었다. 괴력을 발휘하는 도준의 손길에 제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제문은 저항하는 대신 도준의 뺨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미안하다... 내가 더 일찍 너를 찾아냈어야 했는데..." 그 따스한 촉감이 도준의 뇌리에 박힌 차가운 칩의 신호를 교란했다. 도준은 비명을 지르며 제문을 밀쳐냈고, 자신의 작두날을 들어 제문이 아닌 자신의 목 뒤를 향해 내리쳤다. 살점이 튀고 뼈가 깎이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도준은 자신의 목덜미를 후벼 파서 번뜩이는 은색 칩을 강제로 뽑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피범벅이 된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조종당하지 않겠다는 인간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유진의 마지막 자장가와 침몰하는 요새

노인은 자신의 완벽한 설계가 무너지는 광경을 보며 경악했다. "이, 이 미천한 실패작이 감히...!" 노인이 다시 무언가 명령하려 할 때, 무너진 벽 너머로 만신창이가 된 유진이 나타났다. 그녀의 가슴에 달린 기폭 장치의 타이머는 이미 10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진은 도준과 제문을 한 번 쳐다보고는, 평생 느껴본 적 없는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도준아, 할아버지가 말하지 않은 게 하나 더 있어. 엄마는 죽기 직전까지 네 이름을 불렀어. 그건 실험체의 번호가 아니라, 진짜 네 이름이었어." 유진은 노인의 휠체어를 거세게 밀어 요새 난간 끝으로 몰아붙였다. "이제 우리 다 같이 지옥에서 진료받자, 할아버지."

기폭 장치의 숫자가 '0'을 가리키는 찰나, 제문은 도준의 옷덜미를 잡아채고 깨진 창문 밖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다. 뒤편에서 요새 최상층이 거대한 태양처럼 폭발하며 밤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수십 미터 아래 차가운 바다로 추락하며 도준은 멀어지는 불길을 보았다. 그 불길 속에는 자신의 뿌리였던 보경당의 비밀과, 자신을 괴물로 만든 노인, 그리고 끝내 구원받지 못한 유진의 비명이 섞여 있었다. 수면 위로 떠오른 도준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옆에 떠 있는 제문의 손을 잡았다. 제문은 혼신의 힘을 다해 도준을 잔해 위로 끌어올렸다.

31화의 끝, 도준은 차가운 바닷물을 뱉어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손안에는 노인의 집무실에서 마지막 순간 낚아챈 '위원회의 최종 명단'이 젖은 채 쥐어져 있었다. 요새는 무너졌지만, 이 세상을 거대한 실험실로 사용하고 있는 자들은 여전히 도시 곳곳에 숨어 있었다. 도준의 눈은 이제 복수심을 넘어선, 거대한 악의 계보를 뿌리째 뽑아내겠다는 집행자의 눈으로 변해 있었다. 제문은 도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가자, 도준아. 이제 진짜 치료를 시작해야지." 두 남자를 태운 작은 잔해가 새벽 안갯속으로 사라지며, 맹목의 덫은 이제 세상을 향한 거대한 그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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