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26화 - 침묵의 유세장, 심장을 겨눈 은침
광화문 광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차기 대권 후보 1순위, 안세훈 장관의 출정식을 보기 위해 모여든 인파는 거대한 파도처럼 일렁였다. 무대 위 조명은 안세훈의 청렴한 미소를 더욱 눈부시게 비추었고, 스피커에서는 정의와 법치를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화려한 빛의 잔치 이면, 군중의 그림자 속에는 인간의 감정을 지워버린 사신이 스며들어 있었다. 도준은 검은 코트의 주머니 속에 개조된 작두와 은침을 숨긴 채, 한 걸음씩 무대를 향해 좁혀 들어갔다. 유진이 건넨 검은 약물은 그의 신경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수만 명의 심장 박동 소리 중 안세훈의 것만을 정확히 골라내게 만들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 그리고 뒤바뀐 추격
성당의 대폭발 속에서 제문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도준이 던져준 마비 침 꾸러미가 폭발의 충격을 완화해준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아버지가 못다 한 진실을 밝히라는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온몸에 화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된 제문은 무너진 잔해를 헤치고 나와 비밀 수사팀의 안전가옥으로 몸을 숨겼다. "안세훈... 그놈은 자기 아들까지 태워 죽이려 했어." 제문은 갈라진 목소리로 읊조리며 권총에 탄환을 채웠다. 이제 제문에게 법은 더 이상 수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안세훈이 언론을 통해 자신을 범죄자로 낙인찍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그는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었고, 죽은 사람은 법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제문은 안세훈의 유세장에 도준이 나타날 것을 확신했다. 그는 붕대를 감은 채 낡은 가죽 재킷을 걸치고 현장으로 향했다. 경찰의 눈을 피해 통제 구역을 넘나드는 제문의 감각은 형사 시절보다 훨씬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는 무대 뒤편 기계실 인근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안세훈의 사설 요원들이 무언가 거대한 장치를 옮기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보안 장비가 아니었다. 도준을 유인하기 위해 설치된 고주파 발생기이자, 실험체들의 신경계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비밀 병기였다. 제문은 도준이 함정에 빠지기 직전임을 직감하고 무대 하부로 몸을 던졌다.
은색 동공의 포식자, 사냥을 시작하다
도준은 유세장의 소음 속에서 기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귀를 찢는 듯한 고주파음이 그의 뇌를 자극하며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안세훈은 연설 도중 미세하게 도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정의는 결코 악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안세훈의 외침과 동시에 무대 주변의 지지자들로 위장했던 요원들이 일제히 도준을 덮쳤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계산을 잘못했다. 도준이 마신 검은 약물은 고통뿐만 아니라 마비에 대한 저항력까지 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상태였다. 도준은 입에 문 비녀를 작두날에 긁어 불꽃을 일으키며 요원들의 목줄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유세장은 비명과 선혈로 뒤덮였다. 도준의 움직임은 육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는 요원들의 관절에 은침을 박아 넣어 그들을 인간 방패로 삼았고, 작두날을 이용해 안세훈을 호위하던 방탄 유리를 단번에 박살 냈다. 파편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도준과 안세훈의 눈이 마주쳤다. 안세훈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가 서렸다. "이 괴물 같은 놈이... 감히 누구 앞이라고!" 안세훈은 품속에서 호신용 총을 꺼냈지만, 도준의 은침이 더 빨랐다. 안세훈의 손등에 침이 박히며 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준은 안세훈의 멱살을 잡고 무대 한복판으로 그를 끌어냈다.
군중 앞에서 벗겨진 정의의 가면
수만 명의 카메라는 이제 무대 위의 참상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도준은 안세훈의 목에 작두를 들이댄 채, 품속에서 보건소 지하의 비밀 장부와 엄마의 유서를 꺼내 공중에 뿌렸다. "당신들이 믿는 이 남자가 바로 아이들을 죽이고, 자신의 핏줄까지 실험체로 쓴 괴물입니다." 도준의 은색 눈동자가 전광판에 크게 비치자, 광장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안세훈은 발악하며 외쳤다. "저놈은 미친 살인마야! 내 말을 믿지 마라!" 하지만 그때, 무대 밑에서 피투성이가 된 제문이 기어 올라와 안세훈의 다리를 붙잡았다. "장관님, 30년 전 제 아버지를 죽인 것도 기억나십니까?"
제문이 들고 있던 소형 녹음기에서는 안세훈이 성당 소각을 명령했던 육성이 흘러나왔다. 안세훈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군중들의 환호는 야유와 분노로 바뀌었고, 도준은 그 혼란 속에서 안세훈의 귓가에 차갑게 속삭였다. "아빠, 이제 약 지어줄게요. 영원히 깨지 않는 악몽이라는 약을." 도준이 작두를 내리치려는 찰나, 유세장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유진이 소총의 조준경으로 도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렸다. 유진의 목표는 안세훈이 아니었다. 그녀의 복수는 안세훈과 도준이 서로를 죽임으로써 완성되는 것이었다.
26화의 끝, 탕! 하는 총성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 도준의 가슴에서 붉은 꽃이 피어났고, 그는 안세훈을 붙잡은 채 무대 아래로 추락했다. 제문은 비명을 지르며 도준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연막탄이 터지며 무대는 자욱한 안개에 휩싸였다. 안개가 걷혔을 때, 무대 위에는 찢겨진 안세훈의 옷 조각과 도준이 남긴 피 묻은 은침통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도시는 다시 한번 통제 불능의 공포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맹목의 덫은 이제 창조주와 피조물을 모두 집어삼킨 채, 마지막 파국을 향해 입을 다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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