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24화 - 금기된 혈연, 뒤섞인 설계자들

차가운 빗줄기가 골목길의 쓰레기 더미 위로 사정없이 쏟아졌다. 도준은 어깨의 자상에서 울컥거리는 피를 움켜쥐며 유진을 응시했다.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피는 골목의 오물과 섞여 검게 변해갔다. 죽은 줄 알았던 그녀의 생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녀가 내뱉은 '진짜 뿌리'라는 단어였다. 유진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뺨을 매만지며 비릿하게 웃었다. "보건소장은 사육사였을 뿐이야, 도준아. 네 엄마가 널 품었던 건 복수를 위해서였지만,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설계한 건 그 노인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존재들이었지." 유진은 품속에서 낡은 관인(官印)이 찍힌 서류 한 뭉치를 도준의 발치에 던졌다. 젖은 종이가 바닥에 쩍 하고 달라붙는 소리가 마치 도준의 운명이 단절되는 소리처럼 들렸다.

유진의 귀환과 뒤틀린 과거의 폭로

도준은 떨리는 손으로 흙탕물에 젖은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곳에는 30년 전 국가 차원에서 진행된 '신경 가소성 강화 프로젝트'의 명단이 암호처럼 적혀 있었다. 명단의 가장 첫 줄에는 엄마의 젊은 시절 본명인 '김혜숙'이라는 이름이 있었고, 그 옆에는 '피실험체 01'이라는 잔인한 표식이 붉은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엄마 역시 보건소장의 피해자이기 이전에, 국가 시스템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실험도구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실험의 최종 목적은 감정과 도덕성이 완전히 거세된 '완벽한 국가 공작원'을 생산하는 것이었으며, 도준은 그 프로젝트가 낳은 유일한 성공 사례이자 변종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도준의 눈동자가 갈라진 거울처럼 흔들렸다. 자신이 평생 받아온 엄마의 집착 섞인 사랑이 사실은 세뇌의 연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독초처럼 피어올랐다.

"나와 손을 잡아, 도준아. 난 네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그는 지금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만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어." 유진의 제안은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독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그러진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도준이라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을 다시 한번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도준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유진의 목에 개조된 작두날을 갖다 대었으나, 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죽여봐. 그럼 넌 평생 네 엄마가 왜 그토록 너를 괴물이라 부르며 절규했는지, 왜 매일 밤 너를 죽이려다 포기하고 약초를 다듬었는지 절대 알지 못할 테니까." 도준은 작두를 거두었다. 이제 그의 적은 읍내의 국회의원이나 일개 보건소장이 아니었다. 자신을 탄생시키고 폐기하려 한 이 국가의 거대한 그림자 자체가 그의 사냥터가 되었다.

제문의 추적: 얽히고설킨 비극의 실타래

한편, 성진 제약의 아수라장 속에서 도준을 놓친 제문은 경찰 수뇌부의 노골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정직 처분을 받은 몸으로 도준의 옛 은신처인 폐기물 처리장을 다시 뒤졌고, 그곳 지하 깊숙이 숨겨진 암호를 풀어나가다 경악스러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도준이 사냥했던 인물들이 모두 과거 특정 정권 시절의 비밀 공작팀 소속이었다는 점이었다. 제문은 깨달았다. 도준은 단순한 광기 어린 복수귀가 아니라, 과거의 추악한 범죄를 스스로 도려내고 있는 '기억의 집행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제문은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낡고 바랜 수첩을 꺼냈다. 거기엔 제문의 아버지가 의문의 실종을 당하기 직전 남긴 마지막 수사 기록이 적혀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제문의 아버지는 당시 프로젝트의 인권 유린을 감시하던 감사관이었고, 도준의 엄마를 탈출시키려다 국가 요원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이 늪에서 연결되어 있었구나." 제문은 이제 도준을 잡아야 하는 형사가 아니라, 도준과 함께 거대한 진실을 밝혀야 하는 비극의 동료로서의 운명을 예감했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를 구현하려는 제문과, 법 밖에서 피의 처방을 내리는 도준의 방식은 결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이었다. 제문은 유진의 통신 기록을 역추적해 도심 외곽의 버려진 성당으로 향했다. 그곳의 무거운 정적 속에서 그는 도준과 유진이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며 밀담을 나누는 현장을 포착했다.

설계자의 등장과 성당의 핏빛 전야

도준은 서류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다 숨이 멎는 것을 느꼈다. 그곳엔 자신의 지워진 출생신고서 초안이 붙어 있었는데, 아버지란에 적힌 이름은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안세훈'이었다. 그는 현재 청렴한 이미지와 완벽한 법치주의자로 차기 대권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유진은 도준의 경악을 즐기며 덧붙였다. "그는 네 엄마를 사랑한 게 아니야. 자신의 '우월한 유전자'가 극한의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시험해볼 가장 건강한 자궁이 필요했을 뿐이지. 보건소장은 그저 안세훈의 지시를 따르는 하수인이었어. 넌 그가 버린 쓰레기이자, 동시에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살아있는 증거야." 도준은 분노를 넘어선 기괴한 평온함 속에 빠져들었다. 모든 의문이 풀림과 동시에, 그가 지탱해온 세상의 모든 정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때, 성당의 육중한 문이 열리고 제문이 난입했다. "유진, 그만해! 도준이를 더 이상 네 복수의 도구로 쓰지 마!" 제문의 절규와 동시에 성당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검은 정장 차림의 요원들이 창문을 깨고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경찰이 아니었다. 안세훈 장관이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보낸 사설 비밀 처리반 '그림자'였다. 그들은 도준과 유진은 물론, 사건의 전말을 알아버린 제문까지 한꺼번에 매장하려 했다. 요원들은 소음기가 장착된 총기를 겨누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도준은 작두를 고쳐 쥐며 제문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저씨, 이번엔 같이 싸워야 할 것 같아요. 사냥감이 너무 많거든요." 도준은 엄마의 비녀를 입에 물고, 자신의 심장에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찔러 넣듯 눈빛을 번뜩였다.

24화의 끝에서, 도준과 제문은 처음으로 서로의 등을 맞대고 섰다. 읍내의 바보 아들과 정의로운 형사가 아닌, 국가 권력이라는 거대한 괴물에 맞서는 두 남자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성당의 낡은 파이프 오르간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려오고, 안개가 성당 안으로 스며들며 핏빛 전투의 서막을 알렸다. 유진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자, 아들아. 아버지를 죽이고 네 자리를 찾아라." 이제 맹목의 덫은 개인의 복수를 넘어, 세상을 지탱하는 거대한 거짓의 기둥을 뿌리째 흔들기 시작했다. 빗소리는 거세졌고, 성당 안의 촛불은 하나둘 꺼져가고 있었다.

도준과 유진의 대화를 멀리서 감시하며 누군가에게 보고하는 검은 정장 차림의 감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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