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23화 - 가면무도회의 몰락, 핏빛 샴페인

도시의 마천루 최상층에 위치한 '성진 제약'의 창립기념일 파티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홀 안에는 값비싼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권력자들이 가면 뒤에 본색을 숨긴 채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이 우아한 연회의 주인공인 오 회장의 미소 뒤에는 읍내 보건소에서 건너온 추악한 실험 데이터가 막대한 부로 치환되는 피의 연금술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준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웨이터 복장을 한 채 그들 사이를 유령처럼 유영했다. 그의 쟁반 위에는 샴페인 잔들이 놓여 있었지만, 그중 몇몇 잔에는 엄마의 비방과 보건소의 화학식이 결합된 '진실의 독'이 스며들어 있었다. 도준의 눈은 가면 너머로 오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해부하듯 관찰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가면을 쓴 귀빈들로 가득한 제약회사 회장의 호화로운 파티장 전경


가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민낯과 심판

도준은 먼저 오 회장의 최측근인 전무이사에게 다가갔다. 그는 과거 읍내 토지 강제 수용 당시 집행관 노릇을 하며 수많은 주민을 길거리로 내몰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의문의 죽음들을 사고사로 위장했던 인물이었다. 도준이 건넨 특제 샴페인을 들이킨 전무이사는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얼굴 근육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숨이..." 전무이사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그가 평생 숨겨왔던 비리와 범죄 사실들이 환각 상태에서 터져 나왔다. 주변의 귀빈들은 경악했고, 파티장은 순식간에 서로의 치부를 폭로하는 아수라장으로 변질되었다. 도준은 그 혼란을 틈타 오 회장이 대기하고 있는 최상층 펜트하우스로 향하는 전용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읍내의 순진한 청년이 아니었다. 도준은 소매 속에서 접이식 작두를 꺼내 날을 점검했다. 엄마의 거대한 작두를 도시의 좁은 공간에서도 치명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직접 개조한 물건이었다. 그의 심장은 복수심으로 날뛰기보다는, 마치 정교한 수술을 앞둔 집도의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펜트하우스의 육중한 문을 열자, 오 회장은 이미 모든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안락의자에 앉아 고가의 시가를 태우고 있었다. "보건소장 그 미친 노인네가 만든 최고 걸작이 바로 너로구나. 인간의 감정을 거세하고 오직 본능만 남긴 완벽한 기계." 오 회장의 말투는 도준을 인격체가 아닌, 투자 가치가 높은 자산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복병: 사육된 또 다른 아이들

도준이 작두를 휘두르며 돌진하려는 찰나,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나타난 두 명의 그림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도준과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들이었으나, 눈동자에는 일말의 생기도 없었으며 움직임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기계적인 정교함을 보였다. "너만 특별하다고 생각했니? 보건소장은 실패작인 너를 읍내에 버려두고 실험을 계속했지. 여기 있는 이들이 바로 완성된 '성공작'들이다." 오 회장이 비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두 명의 '형제'들이 도준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도준이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은침과 약물 배합으로 무장한, 도준의 거울 쌍둥이 같은 존재들이었다. 도준은 자신이 배운 기술들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기묘한 감각에 전율하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좁은 펜트하우스 안에서 치명적인 공방이 이어졌다. 도준은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엄마가 가르쳐준 야생의 감각을 살려 응전했다. 한 명의 은침이 도준의 어깨를 스쳤고, 즉각적인 마비가 시작되었다. 도준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허벅지를 메스로 깊숙이 찔러 고통으로 신경의 마비를 강제로 억누르며 반격했다. "엄마는 나를 괴물로 만들었지만, 당신은 나를 부품으로 만들었네." 도준은 엄마의 유품인 비녀를 손에 쥐고 적의 빈틈을 파고들어 그들 중 한 명의 미간에 꽂아 넣었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형제'를 보며 도준은 슬픔보다 더 깊은 혐오감을 느꼈다. 이들은 모두 맹목적인 욕망이 낳은 비참한 잔해들이었기 때문이다.

파티의 끝, 그리고 피어오르는 새로운 의문

그때, 펜트하우스 유리창이 깨지며 형사 제문이 난입했다. 그는 정직 중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오 회장의 비리 증거를 확보해 이곳까지 들이닥친 것이었다. "도준아! 그만둬! 네가 저놈을 죽이면 너도 똑같은 살인마가 되는 거야!" 제문의 절규와 함께 특공대원들이 사방에서 총을 겨누며 진입했다. 오 회장은 당황하며 비밀 탈출구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도준은 마지막 남은 붉은 약병의 힘을 빌려 순식간에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도준은 오 회장의 멱살을 잡고 그의 귀를 향해 낮게 속삭였다. "당신들이 만든 약의 맛이 어떤지, 이제 당신이 직접 실험체가 되어봐." 도준은 오 회장의 입속으로 강력한 신경 독극물을 들이부었다.

오 회장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고, 화려했던 펜트하우스는 최루가스와 연기로 가득 찼다. 제문은 혼란을 뚫고 도준을 체포하려 했으나, 도준은 이미 깨진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려 도시의 어둠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오 회장은 목숨은 건졌으나 영원히 자신의 기억 속에 갇혀 살아야 하는 폐인이 되었고, 성진 제약의 추악한 진실은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도준에게 이 승리는 끝이 아닌, 더 거대한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빗물에 젖은 채 어느 골목길에 숨어 숨을 고르던 도준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죽은 줄 알았던, 화상 자국이 선명한 유진이었다.

"도준아, 네 아버지가 그 고리타분한 보건소장뿐이라고 믿니? 넌 아직 진짜 '뿌리'를 보지 못했어." 유진의 서늘한 한마디는 도준을 다시 한번 거대한 충격 속에 빠뜨렸다. 유진은 도준에게 피 묻은 서류 한 뭉치를 던져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맹목의 덫은 이제 읍내와 도시를 넘어,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더 거대한 음모의 심장부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도준은 유진이 건넨 서류 속에서 엄마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 또 다른 이름을 발견하고 몸을 떨었다. 진실의 안개는 걷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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