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22화 - 거미줄의 파편, 무너지는 은신처

버스는 읍내의 짙은 안개를 뚫고 고속도로의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도준은 맨 뒷좌석에 앉아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손안에서 엄마의 낡은 비녀를 굴렸다. 보건소 지하에서 본 그 끔찍한 실험의 잔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도준의 심장은 기묘할 만큼 차분하게 뛰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는 살을 파고드는 가시와 같았다. 엄마는 도준을 무기로 길렀고, 아버지는 그를 실험체로 삼았다. 도준은 가방 속에서 새로 마련한 침통을 꺼내 어루만졌다. 그곳에는 엄마의 이름 대신, 오직 자신의 의지만이 담긴 서늘한 금속의 냉기만이 감돌았다.

도시의 어둠을 삼키는 소리 없는 침

도시는 읍내와 달리 감출 수 없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도준은 보건소장의 비밀 장부에서 확인한 '장학재단'이라는 이름의 거대 조직을 첫 번째 사냥터로 정했다. 겉으로는 빈곤층 아이들을 돕는 자선 단체였으나, 실상은 보건소장의 인체 실험을 위한 '신선한 재료'를 공급하는 공급책이자 자금 세탁소였다. 도준은 화려한 재단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 몸을 숨겼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포식자는 먹잇감이 가장 방심한 순간을 기다리는 법이었다. 그는 주차장의 전력 공급 장치를 무력화시킨 뒤, 비상용 발전기가 돌아가는 틈을 타 재단의 핵심 인물들이 모인 VIP실로 향했다.

재단 이사장과 그 일당들은 보건소장의 소식이 끊긴 것에 대해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노인네가 연락이 안 돼. 읍내에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이사장의 불안 섞인 목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왔다. 도준은 대답 대신 문틈으로 미세한 마비 가스를 주입했다. 잠시 후, 안에서 헛구역질과 무거운 물체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준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은 공포로 가득 찼고, 도준은 그들의 목덜미에 하나씩 은침을 박아 넣으며 속삭였다. "아저씨들이 보냈던 그 아이들,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요? 내가 그 아이들의 고통을 대신 전해주러 왔어요."

도준의 복수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었다. 그는 보건소장에게 했던 것처럼, 그들이 평생 쌓아온 명성과 지위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기억의 거세'를 행했다. 이사장은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다음 날 아침 정문 앞에서 발견되었고, 재단의 추악한 비밀이 담긴 서류들은 익명의 제보를 통해 언론사에 뿌려졌다. 도시는 보이지 않는 사냥꾼의 등장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도준은 무너져가는 재단 건물을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보건소장이 쳐놓은 거미줄은 이제 도준이라는 거대한 칼날에 의해 하나씩 끊어지고 있었다.

도준이 떠난 후 화염에 휩싸인 보건소 지하 실험실과 검게 타버린 비밀 서류들


추적자의 고뇌, 제문의 엇갈린 정의

한편, 보건소 지하 실험실의 잔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제문은 죄책감과 분노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경찰 수뇌부는 보건소장의 범죄를 은폐하려 들었고, 제문은 외압에 의해 정직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제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도준이 남긴 피 묻은 쪽지와 보건소장의 비밀 장부 사본을 들고 독자적인 수사를 이어갔다. "도준아, 네가 하려는 게 정의라고 생각하지 마. 넌 그저 또 다른 괴물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야." 제문은 도준이 다음으로 향할 곳이 어디인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보건소장의 실험에 깊숙이 관여했던 대형 제약회사의 연구소였다.

제문은 빗길을 뚫고 도시 외곽의 제약회사 물류 창고로 향했다. 그곳은 이미 도준의 습격을 받은 듯 경비원들이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제문은 권총을 다잡으며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제문이 손전등을 비춘 곳에는 도준이 무릎을 꿇은 채, 실험실에 갇혀 있던 어린아이 한 명을 안고 있었다. "형사 아저씨, 이 아이는 아직 이름도 없대요. 숫자로 불렸대." 도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괴물이 된 줄 알았던 도준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제문의 마음을 복잡하게 흔들었다.

제문은 총구를 내리지 못한 채 다가갔다. "그 아이를 내게 넘겨, 도준아. 네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도준은 아이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피 묻은 메스가 쥐어져 있었다. "아니요, 아저씨. 세상은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썩었어요. 아저씨의 법으로는 이들을 절대 심판할 수 없어." 도준은 다시 포식자의 눈빛으로 돌아와 제문을 응시했다. 창밖에서 번개가 치며 두 사람의 그림자가 벽면에 거대하게 교차했다. 정의와 복수, 그리고 맹목적인 증오가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안개 속의 선언, 돌아갈 수 없는 길

두 사람의 대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도준은 연막탄을 터뜨려 순식간에 시야를 가렸고, 제문이 기침을 하며 주저앉은 사이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두었다. "아저씨, 나를 잡으려면 더 독해져야 할 거예요. 나는 이제 멈추지 않거든요." 도준의 목소리가 환기구를 타고 멀어져 갔다. 제문이 연기를 걷어내고 밖으로 나갔을 때는 빗줄기만이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도준은 자신의 뒤를 쫓는 제문에게 일종의 경고이자 초대를 남긴 셈이었다. 그는 이제 단순한 복수귀를 넘어, 이 부패한 시스템 자체를 도려내려는 해부학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도준은 빗속을 걸으며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흉터를 어루만졌다. 엄마가 남긴 마지막 유산인 붉은 약병은 이제 비어 있었다. 하지만 도준은 더 이상 약물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의 혈관에는 이미 보건소장이 주입한 증오와 엄마가 심어준 광기가 완벽하게 결합되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도심 한복판의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다음 사냥감인 제약회사 회장의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 "당신들이 만든 약이 얼마나 쓴지, 곧 알게 될 거야."

22화의 끝에서, 도준은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피 묻은 손을 꽉 쥐었다. 그의 뒤로 안개가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읍내의 안개가 아닌, 도시를 집어삼킬 듯한 검은 연기와 안개의 혼합물이었다. 이제 도준은 이름 없는 사냥꾼으로서 도시의 심장부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맹목의 덫은 이제 도준의 발목이 아닌, 그를 만든 세상을 향해 서서히 조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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