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19화 - 허물을 벗은 괴물, 도시의 밤을 수놓는 침
보경당의 지하 서고가 무너져 내리며 뿜어낸 연기는 읍내의 짙은 안개와 섞여 기괴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도준은 불길을 등진 채 천천히 마을 경계선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어깨에는 엄마가 평생 보물처럼 아꼈던, 이제는 피와 그을음으로 얼룩진 작두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약초를 써는 도구가 아니었다. 도준에게 그것은 자신을 괴물로 빚어낸 엄마에 대한 증오이자, 동시에 세상을 난도질할 유일한 권능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읍내에서의 '도준'은 그 불길 속에서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타오르는 잔해 뒤로 비치는 그의 그림자는 마치 수천 개의 은침이 돋아난 거대한 고슴도치처럼 날카롭게 일렁였다.
각성한 포식자, 이름 없는 그림자가 되다
도시는 다시 도준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자의 신분이 아니었다. 도준은 엄마의 일기장에서 읽은 '비밀의 인물'들을 하나씩 추적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국회의원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십 년간 포섭해 두었던 읍내 밖의 조력자들, 혹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옭아매었던 거물들이었다. 도준은 그들을 찾아가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대신, 자신이 새로운 '보경당의 주인'임을 선포했다. 그는 엄마보다 훨씬 잔혹했고, 무엇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엄마는 사랑이라는 핑계로 머뭇거렸던 순간조차, 도준은 단 한 번의 메스질로 정리해 버렸다. 그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그의 눈에는 연민이 거세되어 있었다.
도준은 도시 변두리의 폐쇄된 폐기물 처리장을 자신만의 새로운 '약재상'으로 개조했다. 그곳은 낮에는 죽은 기계들이 썩어가는 악취가 진동했지만, 밤이 되면 도준이 조제하는 치명적인 향기가 감돌았다. 그는 읍내의 야생 약초 대신, 도시의 부패한 욕망을 재료로 쓰기 시작했다. 유력 정치인들의 사고뭉치 자제들, 마약에 찌든 재벌 3세들, 법의망을 피해 숨어든 고위 범죄자들이 도준의 새로운 '환자'가 되었다. 그들은 도준이 제공하는 '망각의 침'과 '환각의 약'에 중독되어 스스로 도준의 사냥개가 되기를 자처했다. 도준은 네온사인이 일렁이는 창밖을 보며 차갑게 읊조렸다. "엄마, 보고 있어? 엄마가 만들려던 세상보다 훨씬 아름답지? 여긴 엄마가 없어도 피 냄새가 끊이지 않아."
침묵의 사냥, 그리고 첫 번째 거물
도준의 약제 제조법은 엄마의 방식을 뛰어넘어 진화했다. 그는 화학 성분과 약초를 결합해 인간의 신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배합을 완성했다. 한 번 그의 약에 손을 댄 이들은 도준의 목소리만 들어도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며 복종하게 되었다. 도준은 이들을 이용해 도시의 거대한 정보망을 구축했고, 읍내 국회의원의 잔당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누가 엄마의 죽음을 방관했는지를 샅샅이 뒤졌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쫓기는 짐승이 아니었다. 그는 도시라는 정글의 최정점에 선 사냥꾼이었으며, 보경당은 그의 은밀하고 거대한 왕국이 되었다. 읍내의 어수룩한 청년은 이제 도시의 어둠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되어 있었다.
도준의 첫 번째 타겟은 국회의원의 배후에서 모든 자금을 관리하며 읍내의 토지 수탈을 주도했던 사채업계의 큰손, '강 회장'이었다. 강 회장은 수십 명의 무장 경호원을 거느리고 철저히 요새화된 빌딩의 펜트하우스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도준에게 벽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도준은 건물의 중앙 공조 시스템에 침투해, 엄마의 비방인 '천궁'과 고농축 마비제를 섞어 안개처럼 흘려보냈다. 건물 안의 경호원들은 자신들이 왜 숨이 막히는지도 모른 채 하나둘씩 무너졌다. 도준은 정전된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작두날을 대리석 바닥에 끌었다. 끼이익— 소름 끼치는 금속음이 정적을 찢고 강 회장의 집무실 문앞까지 도달했다. 소음은 공포를 증폭시키는 가장 확실한 독약이었다.
피로 쓴 처방전, 예고된 파멸
강 회장은 어둠 속에서 나타난 도준의 눈을 본 순간, 자신이 마주한 것이 인간이 아닌 거울 속의 악마임을 직감했다. "돈이냐? 원하는 게 뭐야! 얼마든지 주마!" 강 회장의 비굴한 외침에 도준은 말없이 다가가 그의 목덜미에 은침을 깊숙이 박아 넣었다. "아저씨가 우리 엄마한테 보냈던 그 협박 편지들, 내가 지하에서 다 읽었어요. 우리 엄마는 겁이 많아서 울었지만, 나는 아니거든요." 도준의 목소리는 너무나 맑고 평온해서 더 끔찍했다. 침이 신경을 자극하자 강 회장의 눈동자가 뒤집히며 사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도준은 그가 자아를 잃고 침을 흘리는 백치가 될 때까지 냉정하게 관찰했다. 복수는 열기가 아닌, 가장 차가운 침묵 속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한편,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깨어난 형사 제문은 도준의 행적을 쫓으며 전율했다. 도준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신 대신 '영혼이 거세된 인형'들만이 남았다. 피해자들은 신체적으로는 멀쩡했으나,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도준은 엄마가 자신에게 행했던 그 잔인한 기억 조작법을 복수의 수단이자 통제의 도구로 완성시킨 것이다. 제문은 경찰서 책상 위에 놓인 엄마의 유품, 은침통을 꽉 쥐었다. "이건 모성애가 만든 비극이 아니야.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를 배양한 기록이었어." 제문은 홀로 도준의 은신처인 폐기물 처리장을 향해 마지막 추격을 시작했다. 안개 낀 도시의 밤, 두 사나이의 운명은 피할 수 없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19화의 마지막, 도준은 강 회장의 금고에서 찾은 낡은 사진 한 장을 불태웠다. 그 사진 속에는 엄마와 국회의원, 그리고 한 명의 남자가 더 있었다. 도준은 불타는 사진을 보며 자신의 왼쪽 가슴에 박힌 오래된 흉터를 만졌다. 그 흉터는 엄마가 아닌, 사진 속 그 남자가 남긴 증오의 흔적이었다. "이제 마지막 한 명 남았네. 엄마가 제일 무서워했던 그 사람." 도준은 엄마가 남긴 마지막 비방인 '붉은 약병'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들이키는 순간, 그의 눈동자는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그의 심장은 인간의 감정이 아닌 포식자의 박동으로 고동쳤다. 도시의 밤은 더욱 깊어졌고, 안개는 이제 도시 전체를 질식시킬 듯 거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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