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의 덫 제18화 - 회귀의 안개, 잿더미 속에 핀 악의 꽃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뒤로하고 도준이 탄 낡은 트럭은 다시 읍내의 좁은 국도로 접어들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읍내 특유의 짙은 안개에 잠겨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도준의 손에는 유진에게서 빼앗은 낡은 열쇠 꾸러미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쇠붙이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지도 모를 거대한 진실로 향하는 열쇠였다. 읍내 초입에 들어서자, 폐허가 된 보경당의 타버린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쳤다.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던 그곳은, 사실 모든 것이 시작되어야 할 장소였다.
폐허 위에 핀 망령의 목소리
보경당의 터는 참혹했다. 한때 약초 향기가 가득했던 공간은 검게 그을린 서까래와 깨진 약탕기 파편들로 뒤덮인 무덤이 되어 있었다. 도준은 천천히 잿더미 위를 걸었다.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숯덩이 소리가 마치 엄마의 비명처럼 들려왔다. 그는 마당 한가운데 멈춰 서서 유진의 품에서 보았던 사진을 떠올렸다. 젊은 시절의 엄마, 그리고 국회의원.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은 도준이 평생 믿어온 '착한 아들과 헌신적인 엄마'라는 서사에 거대한 균열을 내고 있었다. 도준은 열쇠 꾸러미 중 가장 낡고 붉게 녹슬어 있는 열쇠를 골라 쥐었다.
도준은 엄마가 평소 절대 접근하지 못하게 했던 약초 저장고의 가장 깊숙한 구석으로 향했다. 불길은 지상의 모든 것을 삼켰지만, 땅 밑 깊은 곳의 습기는 불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겹겹이 쌓인 잔해를 치우고 바닥의 비밀 판문을 찾아냈다. 열쇠는 마치 제 자리를 찾은 듯 부드럽게 돌아갔고, 육중한 나무문이 열리며 지하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단을 내려가자, 읍내의 안개보다 더 차갑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도준을 맞이했다. 그곳은 엄마가 평생 숨겨온 '진짜 보경당', 즉 읍내의 모든 악취 나는 진실이 보관된 서고였다.
지하실 벽면에는 읍내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작은 상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도준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상자를 찾아냈다. 상자 안에는 낡은 배냇저고리와 함께 한 장의 편지, 그리고 유전자 검사 서류가 들어있었다. 서류의 결과는 명확했다. 도준은 엄마가 사랑해서 낳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국회의원이 젊은 시절 저지른 수많은 악행 중 하나, 즉 강요된 관계 속에서 태어난 증오의 산물이었다. 엄마가 도준을 그토록 맹목적으로 보호했던 이유는 순수한 모성애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겪은 지옥을 아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처절한 속죄이자, 동시에 아들을 자신의 '유일한 무기'로 사육하기 위함이었다.
뒤바뀐 기억: 사육된 포식자
도준은 지하실의 낡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그가 증오하던 국회의원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도준이 바보처럼 살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의 눈을 피해 가장 날카로운 칼날로 성장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도준이 어릴 적 겪었던 그 '사고'들,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었다고 믿었던 순간들은 사실 엄마가 은침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도준의 기억을 조작하고 감정을 거세했던 의식이었다. 엄마는 도준의 뇌 속에 맹목적인 복종과 살인적인 본능만을 남기고, 나머지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기억은 약물과 침으로 마취시켜 버렸던 것이다.
"엄마...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 나를 만든 거였어?" 도준의 쉰 목소리가 지하실 벽에 부딪혀 공허하게 되돌아왔다. 그는 상자 밑바닥에서 엄마의 일기를 발견했다. [이 아이는 그놈의 핏줄이다. 하지만 내 손에서 자라는 순간, 그놈을 파멸시킬 가장 독한 약재가 될 것이다.] 엄마의 필체는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도준은 이제야 모든 조각이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저택에서 본 국회의원 아들과 똑같은 점퍼를 입고 있었던 이유, 국회의원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진짜 이유. 그는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그 집안의 수치스러운 치부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그때, 지하실 입구에서 그림자가 비쳤다. 죽은 줄 알았던, 혹은 죽기를 바랐던 인물이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진태가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도준아, 진실을 보니까 어때? 네 엄마가 널 어떻게 괴물로 빚어냈는지 이제 알겠냐?" 진태는 비열하게 웃으며 수동식 기폭 장치를 들어 보였다. "국회의원은 죽었지만, 그놈이 남긴 마지막 지시가 있었지. 보경당 밑에 숨겨진 걸 모두 태워버리라고. 너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진태의 손가락이 버튼을 향해 움직였다.
안개 속으로 흩어진 마지막 인간성
도준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진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눈에는 공포도, 분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엄마가 주입했던 그 차가운 살의만이 결정(結晶)이 되어 빛나고 있었다. "진태 형, 우리 엄마가 그랬어. 약은 정성을 다해 지어야 한다고. 형은 너무 성급해." 도준의 손등에서 은침이 번뜩였다. 진태가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도준의 침은 진태의 팔목 인대를 정확히 끊어놓았다. 진태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도준은 그 위로 올라타 메스를 높이 쳐들었다.
하지만 도준은 메스를 휘두르는 대신, 진태의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지하실의 서류더미에 불을 붙였다. 엄마의 광기가 담긴 기록들, 자신의 비극적인 출생의 증거들, 그리고 읍내 사람들의 추악한 비밀들이 불길 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도준은 불길을 바라보며 자신의 머리 뒤편, 엄마가 항상 침을 놓던 그 자리에 스스로 메스를 갖다 댔다. "이제 엄마가 만든 도준이는 죽었어."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특정 신경을 자극했다. 그것은 고통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억눌려 있던 모든 감정을 폭발시키는 극약 처방이었다.
지하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도준은 불타는 지하실을 빠져나와 안개 낀 읍내 광장으로 나섰다. 그의 뒤로 보경당의 잔해가 완전히 주저앉으며 거대한 불기둥을 뿜어냈다. 이제 도준에게는 엄마도, 과거도, 이름도 없었다. 그는 오직 피비린내 나는 본능만을 가진 채,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 전체를 향해 등을 돌렸다. 멀리서 제문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지만, 도준은 안개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18화의 끝에서 도준은 읍내의 경계선에 서서 작두 하나를 어깨에 멨다. 그것은 엄마의 도구였으나, 이제는 그의 유일한 동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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